지금으로부터 10년전, 그러니까 정확하게 2014년 8월 15일, 이름 모를 곳에서 나의 작은 강아지는 태어났다.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당시에는 펫샵에서 강아지를 분양받는 것이 당연했다. 가정분양이란 개념 조차 생소했던 시기였다.
나의 작은 강아지는 내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러가던 번화가 쪽에 있던, 많고 많았던 펫샵 중 한 곳이었다.
똑같이 흘러가던 어느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선포하듯 말하셨다.
"우리 강아지 보러가자."
나는 아직도 왜 아버지가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말하셨는지 모른다. 아버지께 물어봐도 "그냥, 그땐 그러고 싶었어."라는 시시한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구경하러갔다.
딸랑-
"어서오세요"라며 온몸에 털알러지로 아토피가 두드러진 젊은 사장님이 반겨주었다.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본인의 피부정도는 헐어도 괜찮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정말 그가 대단해보였다. 아버지는 큰 강아지를 원했다.
이 때보다 더 어린 시절, 그러니까 2004년쯤 집에서 키우던 코카스패니얼 소리가 교통사고로 하룻밤 죽었는데 소리라는 강아지는 엄청난 에너자이저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코카스패니얼 종 자체가 에너지가 넘치는 종이라고.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중형견정도의 활발한 강아지를 원하셨다. 마치 데려갈 것처럼.


그때였다. 나의 작은 강아지는 맨 윗칸 오른쪽끝에 있었는데 아버지를 보자 그렇게 애교를 부렸다.
아버지의 선택지에 없던 그 작은 강아지는 아버지의 손가락 끝을 따라 뒹굴었고, 아버지는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데려가자" 한마디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2014년 10월 26일
나의 작은 강아지는 태어난지 2개월하고 열흘쯤 되던 날 우리 가족이 되었다.
열악한 분양환경만큼이나 어떠한 검사나 조치도 없이 그냥 물건 사듯 돈을 지불하고 용품을 받고 집으로 왔다.
당시 둘째 연은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셋째 정은 이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연의 학원마치는 시간에 가서 우리집에 온 작은 강아지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연이 차에 타자마자 말했다. 우리집에 새로운 넷째가 생겼노라고.
"헐. 그게 정말이야? 빨리 보러가자!"
연은 얼떨떨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서로의 이름이 더 예쁘다며 옥신각신하며 서둘러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작은 강아지는 귀여웠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거라는 사장님의 말이 민망하리만큼 꺼내달라고 철제 울타리를 깨물어 '저러다 이가 다 빠지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시간만에 집 적응을 끝낸 작은 강아지는 우리에게 와 가족이 되었다.
광복절에 태어난 의미있는 강아지라며, 빛날 광(光)과 복 복(福)자라며 나름의 의미를 담아 '김광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과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